25년 9월의 상칼파

나는 몸과 정신에 틈을 내어 그 안을 강인함과 에너지로 가득 채운다.

25년 9월 첫째주는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알차고 가장 에너지를 많이 쓴 주간이 아닐까 싶다. 매일 출근과 퇴근하는 것도 대단한 일인데, 일과시간에는 백엔드 신입 개발자 온보딩과 이슈 처리, 그리고 몇가지 기획회의를 했다. 퇴근 후 집에서 저녁 먹고 바로 짧게라도 20분짜리 요가를 해서 땀을 낸 다음에 씻고 다시 깨끗한 마인드로 집 컴퓨터 앞에 섰다. 그렇다고 수면시간을 희생한 것도 아니다. 물론 목-금 넘어가는 날은 막바지 달리기를 했지만 나머지는 최소수면시간인 7시간을 보장했다.

이런 일주일을 보내게 된 데에는 당연히 "9월 4일까지 일을 끝낸다"는 굳은 의지도 한몫했다. 하지만 그런 의지가 자주 꺾이는 나에게 무려 5일동안이나 이런 생활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바로 의도적인 틈을 지속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처음 하게 만들었던 건 유튜버 '지식은 날리지' 채널의 영상 한 편을 본 뒤에서부터였다.

영상에서는 결핍이 사람의 인지구조를 어떻게 바꿔놓는지에 대한 간단한 실험에 대해서 설명한다. 실험대상자에게는 시험 문제를 풀 때 시간을 빌려쓸 수 있는 버튼을 만들어 한 문제당 풀이시간이 초과할 때마다 버튼을 누를지말지 스스로 결정하게 만들었다. 그러자 오히려 그 버튼이 없던 대조군에 비해서 성적이 더 떨어졌다는 결론이었다.

사람들은 이 빌리는 행위에 대하여 안일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조금만 신중하면 더 효율적인 결과를 낼 수 있었겠지만 눈 앞에 보이는 당장의 이득에 눈이 멀어 이자가 불어나는 결과를 초래하고 뒷부분의 문제를 풀 시도조차 못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현대인은 항상 바쁘게 움직이고 여유가 없는 것을 미덕으로 여긴다. 항상 한 손엔 커피를 다른 손엔 스마트폰으로 바삐 쇼츠 영상을 넘긴다. 데드라인에 쫓겨 결국 출시를 미루거나 응급실 환자를 받아들이지 못해 뺑뺑이를 돌리는 현상이 반복된다. 풀소유, 풍족함에 대한 욕망이 어쩌면 전후 찢어지게 가난했던 역사적인 원인도 한몫하지 않을까 싶다. 전쟁의 잔재는 많이 사라졌어도 결국 세대가 흘러도 그런 풍토는 쉽게 바뀌지 않으니까.

컵에 물이 가득 차 있는 상황에서 물을 더 붓는다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흘러넘치겠지. 지금 현대인들의 마음상태가 딱 가득 찬 컵 상태라고 볼 수 있다. 더 이상의 추가적인 정보, 변수, 이슈들에 우리는 적절하게 대응할 여유조차 남지 않은 상태이다. 가득 차 있지만 역설적으로 결핍된 상태를 만성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다. 영상에서는 바로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서 느슨함을 제안한다.

요가에서도 느슨함의 미학에 대해서 자주 언급된다. 내가 요가수련할 때 자주 듣는 요가소년 채널에서도 늘 "몸에 틈을 내어라" 라는 말을 자주 한다. 전굴자세를 할 때 복부를 밀어넣지 않으면 죽어라 노력해도 요추에 무리가 갈 뿐 이쁘게 자세가 나오지 않는다. "숨을 쉬어라" 라는 말도 자주 하는데, 폐에 들어있는 숨을 의식적으로 완전히 비워야 숨을 깔짝일 때보다 더 편하다.

이제 나는 틈을 내라는 말에 단지 배를 홀쭉하게 밀어넣으라는 말로 들리지 않는다. 정신적으로도 틈을 내어 자세에서 1초라도 더 버티고, 내 스스로에게 "괜찮아"를 말해줄 수 있는 용기를 장착했다. 업무적인 측면에서도 느슨함을 만들어두어 예상치 못한 변수가 찾아오더라도 조금 더 유연하게 적응할 수 있는 최적의 상태를 만들어놓는다.

The Art of Stress-Free Productivity - David Allen at TEDxClaremontCollages {GTD} 에서도 비이이슷한 내용이 나온다. 바로 Psychic Bandwidth이다. 쏟아지는 업무와 아이디어들을 명확하게 구분하여 당장에 필요치 않은 작업은 액션아이템만 만들어놓고 가장 중요한 작업들만 Psychic Bandwidth에 올려놓아 인지부하를 줄이는 방법에 대해 설명한다.

나는 GTD 템플릿 2025-09-07 ver 템플릿을 만들어놓고 중요치 않은 작업들을 데일리 GTD에 작성하면 Dataview 쿼리에 의해 자동으로 날짜별로, 중요도별로 정리가 되어 매주 월요일이 되면 그 내용들을 한 번 쭉 읽는 것으로 무엇이 중요한지, 급한 일은 뭔지, 시간 남으면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를 캐치할 수 있다.

GTD 방법론에서 더 나아가 이번주는 매일매일 의도적으로 20분의 요가수련에 시간을 투자하면서 가뜩이나 피곤하고 졸릴 밤시간에 일부러라도 요가매트 위에 올라 내 꼬라지를 다시 확인하며 내 몸과 정신에 가능한 틈을 만들어보려고 애썼다. 그 결과, 저녁식사 후 30분에서 한시간 누워서 유튜브 보던 것보다 훨씬 청명한 정신상태로 저녁일과를 시작할 수 있었고, 밤 12시를 넘기기 전까지 해당 세션의 목표를 달성한 상태로 미련없이 잠에 빠져들 수 있었다.

요가수련은 이제 내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축 중에 하나가 되었다. 단순 운동에서 출발했지만 이젠 삶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나의 꼬라지를 들춰내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직시하도록 만들어냄은 물론 내 마음에 틈, 느슨함, Pshychic Bandwidth를 모두 확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지도자 그 자체가 되었다.